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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공계 연원
1세조
인맥
   

인맥(人脈)

삼중대광 문충공 崔群玉은 고려때 문하시랑 평장사를 지내고 완산부원군에 봉해졌으며. 그의 후손 崔松年은 고려 명종때 완산의 명사 崔陟卿. 崔均. 등과 더불어 "完山의 3崔" 라고 일컬어졌으며 문장으로도 명성이 높았다.

문신들의 압도적인 권력투쟁 속에서 혈전의 공으로 가문을 빛낸 무신 최칠석(七夕)은 1381년 (우왕7년) 해도(海島)의 만호(萬戶: 무관직. 정4품 벼슬)가 되고. 1388년(우왕14년) 밀직부사로 원수(元帥)가 되어 왜구 소탕에 공을 세우고 창왕(昌王) 때 박위와 함께 대마도를 정벌했다. 조선이 개국되자 경기우수 수군절제사를 역임했다.

벼슬을 버리고 은둔생활로 세상과는 등을 돌리며 끝까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굳건한 절개로 먼 후대의 자손들에게까지 명문의 긍지를 남기고 간 자랑스러운 인물. 최양(崔瀁)은 포은 정몽주의 생질로 우왕때 문과에 급제하여 이부상서 대제학을 역임하고. 1392년 고려가 망하자 사직하고 전북 진안군 팔공산에서 3년간을 은거하다가 전주 대승동에 퇴거 하였다. 조선 태종이 친구로 대우하며 두 제상자리와 전록 800결을 하사하였으나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 "두임금을 섬길수 없다고" 끝내 이를거절 하였다.
개성두문동 72현(杜門洞 七十二 賢: 고려가 망하자 유신 72명이 끝까지 이조의 록을 먹지않고 절의를 지키다 순절 하신 분)에 포함되었고 그의 후손들도 선조의 유지를 쫓아 끝까지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