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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세조 문성공계 > 소개 > 1세조
문성공계 연원
1세조
종가
인맥
 

1세조(一世祖)

전주최씨문성공계(全州崔氏文成公系) 시조(始祖)는 최아(崔阿)이다. 최아(崔阿)는 자(字)가 형지(衡之)이다. 고려 27대왕 충숙왕(忠肅王)때 분이다. 어려서부터 점잖으시고 품위(品位)가 원만(圓滿)하시며 학문(學問)에 정진(精進)하였다. 27대왕 충숙왕(忠肅王)때 문과(文科) 과시(科試)에 합격하고 염정(廉正) 결백(潔白)한 공의 생활신조는 곧바로 나라 정치에 반영이 되어, 엄정정직(嚴正正直)과 청렴결백(淸廉潔白)한 정치 그대로였다. 정부에서는 신망(信望)을 두터이 하였으며, 백성들은 가는 곳마다 덕(德)을 우러러 존경(尊敬)을 받으시고 벼슬은 날로 오르시어 드디어 문하시중(門下侍中 : 국무총리) 평장사(平章事)까지 오르시어, 문자 그대로 일인지하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최고 벼슬에 오르시어 백성들이 우러러 따랐다. 공께서 찬성사(贊成事 : 차관급)때 국가고시를 정학하였는데, 이암(李嵒)등 37명의 정예(精銳)선비를 뽑아 국가에서 역사에 드문 인물을 얻었다는 평을 받았다. 공께서 천명을 다하시어 작고 하시자 나라에서는 문성(文成 : 크게 문학을 일으켜 완성하셨다는 뜻)이란 시호(諡號)를 내리시고, 완산군(完山君)을 봉하셨다. 공은 四男二女를 두셨으니 장남은 경상안렴사(慶尙按廉使 경상도도지사)를 지낸 용생(龍生)이요, 차남은 대호군(大護軍 대원수급)을 지냈으니 용각(龍角)이요, 3남은 상서이부(尙書吏部)의 판사(判事 장관)를 지낸 용갑(龍甲)이요, 4남은 중랑장(中郞將 소령급)을 지냈으니 용봉(龍鳳)이다. 또 장녀는 전주유씨(全州柳氏) 유지(柳池)에게 출가했고, 둘쨋딸은 문하찬성(門下贊靑 차관급)인 최선능(崔善能)에게 출가하였다. 산소는 전라북도 완주군(完州郡) 소양면(所陽面) 죽절리(竹節里) 분토동에 모시고 있다. 시제는 양력 3월 마지막 일요일에 四派 자손인 전국각지에서 참례하는 향사로 올리고 있다.

1세조(一世祖) 묘소(墓所)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죽정리, 전주시내(全州市內)에서 진안(鎭安)으로 가는 동북(東北) 국도(國道)를 따라 약 8㎞를 가면 소양천이 가로 지르면서 다리(소양교(所陽橋))가 나선다. 왼편 소양천 뚝위에 주덕제(周德齊) 입구라는 높이 10m의 입비(立碑)가 우람하게 서있다. 여기서부터 포장이 안된 좁은 자갈길을 3㎞쯤 오르면 산세(山勢)의 아름다움과 전원(田園)의 향내를 마음껏 음미하면서 대나무 숲으로 감싸인 동네가 나온다. 바로 이곳이 죽절리(竹節里), 댓쪽같은 강직함과 그 신념(信念) 절조(節操), 기개(氣槪)가 담겨진 곳이요, 최씨(崔氏)의 특성(特性)을 지니고 있는 죽절리(竹節里)인 것이다. 1세조(一世祖) 문성공(文成公) 최아(崔阿)) 묘(墓)를 비롯하여 그의 증손(曾孫) 월당공(月堂公) 최담(崔霮), 소윤공(少尹公) 최득지(崔得之), 연촌공(烟村公) 최덕지(崔德之) 등의 묘소(墓所)가 주덕산(周德山)의 정기(精氣)를 내뿜고 있다. 그 외, 판사공(判事公) 최용갑(崔龍甲), 중랑장(中郞將) 최용봉(崔龍鳳)), 사온(司醞) 동정공(同正公) 최을인(崔乙仁))의 단각(壇閣)이 모두 이곳에 있으므로 모든 향사(享祀)를 다스리는 주덕재(周德齋)는 죽절리(竹節里) 마을을 지키는 유일(唯一)한 재각(齋閣)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