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회원가입ID/PW찾기
화수회 소개
|
문열공계
|
문성공계
||
문충공계
|
알림방
|
자료실
|
족 보
소개|세계도|항렬표|시향|족보간행|파명 및 세거지|역대명인
 1세조 사도공계 > 소개 > 1세조
사도공계 연원
1세조
종가
인맥
 

1세조(一世祖)

1세 최균(崔均)은 완산부에서 태어난 완산 사람이기 때문에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삼았고 고려조에서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시조 최균은 고려 명종 때 예부랑중겸 태자문학(禮部郞中兼太子文學)을 지내고 정조사(正朝使)로 금(金) 나라에 다녀왔으며 서경(西京)의 조위총(趙位寵) 난을 진압하려 출동했다가 순절하였다. 뒤에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추증 되었으며 문장(文章)과 초서(草書), 예서(隷書)에 뛰어났는데, 이 자손들이 대대로 여조(麗朝)의 명신(名臣)으로 이름을 남겼다.

1세조(一世祖) 묘소(墓所)

1세조 최균(崔均)의 묘는 실전(失傳)되었다. 공(公)은 동북로지휘사(東北路指揮使)로 서경유수(西京留守)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토벌하러 출전, 대장군(大將軍) 이의(李儀)와 함께 화주(和州)싸움에서 이거(李琚)의 배반으로 역도들에게 잡히니 화주(和州)는 오늘의 함경남도 영흥군이다. 이곳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치니 때는 1174년 고려(高麗) 명종(明宗) 4년 10월, 당시 함경도의 10월은 눈이 많이 쌓이고 큰 바람이 불어 공의 순절을 슬퍼하였다. 공의 장자(長子) 최보순(崔甫淳)은 그때 겨우 열두 살 어린 나이었으며 아우 보정(甫廷)도 어리었으나 아버지의 유택을 전주(全州) 황산(黃山) 분토동(粉土洞)에 모시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묘소를 찾지 못하고 있음은 오늘날 후손들의 큰 슬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