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人脈)
시조 최균(崔均)은 복야공(僕射公)으로 알려져 왔으나 근래에 역사 기록에서 사도(司徒)의 벼슬을 역임한 기록이 나타나므로 사도공(司徒公)으로 부르고 있으며, 공(公)의 자손 10여 대(代)가 고려조에서 화려하게 문벌을 형성하였다. 그중 6세손이 되는 문간공(文簡公)은 원(元) 나라 내란을 평정하고 무종(武宗)의 즉위에 큰 공을 세우고 찬성사(贊成事)에 올라 광양군(光陽君)에 봉해져 시호를 문간(文簡)이라 내렸으므로 후손들은 문간공파(文簡公派)라 불리고 있으며 그를 숭앙하고 있다. 9세손 최을의(崔乙義)는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했고 최병례(崔丙禮)는 판서(判書), 최정지(崔丁智)는 총랑(總郞) 벼슬을 하여 모두가 현달했다. 이조(李朝)에 들어와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세종(世宗)을 도운 최부(崔俯)와 황주부사(黃州府使)로 단종(端宗)에게 충성을 다한 최제남(崔悌男), 정조(正祖)때 명필이며 시인이었던 신포공 최동환(崔東煥)은 문명(文名)을 떨친 인물이었다. 평양의 영광정 판상사는 그의 명작(名作)으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