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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가 문성공계 > 소개 > 종가
문성공계 연원
1세조
종가
인맥
 

종가(宗家)

찬란한 역사를 꽃피웠던 옛 가야국(加耶國)의 고도(古都), 고성(固城), 경상남도(慶尙南道) 동해(東海), 천혜의 정경과 고찰(古刹)이 지난날의 번성(繁盛)을 말해주고 있다. 1250년, 고려(高麗) 충정왕(忠定王) 2년에 당시 내시의 무리들이 원(元) 나라의 총애를 받고 있음을 믿고 우리나라 백성들에게 방자하게 굴고 해독을 끼치고 있는 것을 경상도(慶尙道) 안겸사(按兼使)인 최용생(崔龍生)이 그들의 죄(罪)를 낱낱이 들추어 여러곳에 방을 붙이게 하여 백성들에게 폭로하였다. 이 일을 어향사(御香使 : 제사지내는 사신)로 내려온 주원지(朱元之)가 공주(公主)에게 고해 받쳐 해임케 했다. 최용생(崔龍生)이 바로 1세조(世祖) 문성공(文成公) 최아(崔阿)의 장자(長子)로 경상도(慶尙道) 안렴사(按廉使)로 왔다가 눌러 살면서 사천군(泗川郡)과 고성군(固城郡) 일대 자손(子孫)이 번성(繁盛)하면서 종가(宗家)가 이루어 지고 현재 고성군(固城郡) 구만면(九萬面) 효락리(孝洛里)에 200여호가 몰려 살면서 터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