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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열공계 연원 문열공계 > 소개 > 문열공계 연원
문열공계 연원
1세조
본관 전주
종가와 세거지
인맥
문열공(文烈公) 휘 순작(諱 純爵) 계(系)

연원(淵原)

성품이 너그럽고 문장에 능한 최언휘(崔彦撝)는 신라(新羅)사람으로 18세에 당(唐) 나라에 유학하여 급제하고, 42세에 신라로 다시 돌아왔다. 조정에서는 그를 맞이하여 서서원학사(瑞書院學士)로 제수하고, 많은 유생(儒生)들을 교육하도록 했다. 왕건(王建)이 고려(高麗)를 개국하고 신라 경순왕(敬順王)이 고려에 귀순하니, 최언휘도 가족을 데리고 그를 따라 고려로 왔다. 고려에서 그의 탁월한 문장과 덕망을 인정하여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제수하고, 태자(太子)의 스승과 한림의 책무를 맡기니, 당시 귀족들이 모두 스승으로 섬기었다. 이후 개국초기(開國初期)의 교육에 큰 공로로 시중(侍中) 벼슬을 받고 평장사(平章事)를 겸하였다. 이때에 경주(慶州)에서 완산(完山, 지금의 전주)으로 옮겨 살게 된 언휘 공은 최씨(崔氏)로서는 최초로 완산(完山)에 살게 되었으므로, 완산개국백(完山開國伯)에 봉하게 되었다. 고려 혜종(惠宗) 원년 갑진12월에 졸(卒)하니 나라에서는 문영(文英)이란 시호(諡號)를 내렸다.